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조금 긴 글로 인사드려요.
올 한 해는 어떤 한 해로 기억에 남을까요? 저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의 테마를 정하는 시간을 갖곤 하는데요. 2024의 테마는 디깅과 현실이었어요. 이상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올 한 해는 그 이상적인 생각들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생각보다 프린들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해결이 필요했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던 한 해였네요.
2024년을 돌아보니,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들은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했던 때들이더라고요. 역설저기게도, 그런 특별한 순간들이 빛날 수 있었던 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의 루틴 덕분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2025년에도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며,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대화를 통해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탐구하고 프린들에 기록하고 싶네요.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방문했던 공간을 다시 찾는 일이 많아 자주 글을 올리지는 못하고, 새로운 공간을 빠르게 소개하는 편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공간이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린들. 매달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간들을 남겨보아요. 같은 공간에서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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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포터블 로프트 (양재)
친구들이 양재 시민의 숲에 놀러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입니다. 조용한 동네라, 낮에 혼자 방문해 책을 읽기에도 좋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동네 아지트인데요. 신기하게도 이곳에 올 때마다 좋은 소식을 듣는 일이 많아, 양재에서 축하할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입니다.
2월 : 끄라비 (태국)
끄라비는 태국 남부에 위치한 휴양지이에요.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고 싶어 찾아보던 중, 친구가 보여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여기다!'라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이 많아 여행 온 느낌이 물씬 났고, 제가 머물렀던 라일레이는 크지 않아 관광을 좋아하는 분들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유유자적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해 드려요. 암벽 등반, 집라인, 카약, 패들보트 등 다양한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어서 함께 여행한 친구들과도 연말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3월 : 민속손국시 (분당)
분당 금호행복식장에 있는 수제비 가게입니다. 판교에서 근무할 때 팀원분들이 데려가 주셔서 알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살면서 먹어본 수제비 중 가장 맛있었던 곳입니다. 그 이후로 10번 정도 더 방문했을 정도로 자주 찾게 된 곳인데요. 두껍고 밀가루의 식감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특히 추천드립니다. 동네 주민들이 주로 방문하는 로컬 음식점으로, 김치볶음밥도 맛있어서 함께 즐기기 좋습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수제비 가게.
4월 : 산오리 (의정부)
의정부에 위치한 오리구이 전문점입니다. 오리마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말 그대로 오리구이 전문점들이 마을처럼 모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습니다. 한적한 근교 음식점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부위별로 다양한 오리 요리가 나와 질리지 않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곳은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가 80%라서, 운전할 일이 생기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5월 : 아틀리에 셈템버 (한남동)
팝업으로 운영된 공간이라 지금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아틀리에 셉템버. 덴마크 아틀리에 셉템버를 오래전부터 궁금해해서 방문했는데, 음식, 가구, 식기 등이 상상하던 것과 비슷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특히 응대해 주신 분이 덴마크에서 일하시는 한국 분이셨는데, 캐주얼하면서도 따뜻한 응대 덕분에 마치 친구의 공간에 초대받은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6월 : 스테이 오별 (횡성)
지역보다는 숙소를 기준으로 선택해 다녀오게 된 횡성의 스테이오별.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라 호텔처럼 깔끔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날씨와 뷰가 좋아서 오래 기억에 남는 공간입니다. 4명이 함께 지내기에 충분히 넓었고, 숙소에서 넓은 호수와 울창한 나무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정원이 있어 숙소에서만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만족스러웠던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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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 씨네큐브 (종로)
올해 7월에 처음 방문한 씨네큐브. <퍼펙트 데이즈>를 관람했는데, 7월의 날씨가 영화 속 날씨와 닮아서 상영 후 가로수가 늘어선 길을 기분 좋게 걸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근처 에무 시네마보다 널찍하고, 쾌적한 분위기라 또 다른 매력이 있었던 독립 영화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영화관이 추가되어 즐거웠습니다.
8월 : 백촌막국수 (고성)
고성을 갈 때마다 들르는 코스, 백촌막국수.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막국수는 특히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음식인 것 같아요. 함께 나오는 백김치와 열무김치도 맛있고, 막국수와 수육의 조합도 참 좋습니다. 이번에 5명이 수육 두 개를 주문했는데 약간 많아서, 다음에는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도록 한 개만 주문할 것 같아요. 막국수를 취향에 따라 기름막국수, 물막국수, 비빔막국수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인 곳입니다.
9월 : 세미나하우스 S1516 (베를린)
유럽의 숙소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호텔도 좋지만, 현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구나 식기 등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요. 유럽에는 멋진 공간이 많았지만, 하나만 꼽자면 베를린의 숙소가 기억에 남습니다. 위치도 좋았고, 베를린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아파트를 숙소 형태로 렌트한 곳이었어요. 3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디테일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독일은 모든 것을 허투루 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 작은 방에서도 그 정교함과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책상을 벽에 고정시키고 접었다 열었다 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선반, 수납공간의 자재와 형식이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면서 만들었구나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거주 공간이 한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한국의 원룸들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을 넘어, 개인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0월 : 커피스트 (종로)
유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와서인지, 업무의 변화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서울의 어느 공간을 가도 탐구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나.. 늙은걸까...'라며 조금 두렵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눴었어요. 그러다 날씨가 좋았던 10월 말, 처음으로 경희궁을 방문하게 되었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근처의 커피스트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야 방문하게 되었는데, 왜 이제야 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며,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게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산책했던 날이었습니다.
11월 : 꼼다비뛰드 (역삼)
작지만 많은 정성과 시간, 그리고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빵. 빵은 온도와 재료의 비율에 매우 민감한 음식이라 외관상 차이가 없어 보여도 만드는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평소 빵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니라서, 한 번 먹을 때 입맛에 꼭 맞는 곳을 찾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곳이 ‘꼼다비뛰드’였어요. 혼자 조용히 와서 샌드위치를 먹고 가는 사람들과, 정성스럽게 손님 한 분 한 분을 응대해 주시는 주인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자주 방문하게 되겠다는 생각하게 되었고, 2주 연속으로 방문하게 되었네요. 샌드위치가 참 맛있어요!
12월 : 도우큐먼트 (을지로)
일 년 하고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다시 찾은 도우큐먼트. 아늑한 분위기와 담백한 화덕 피자가 맛있어서 겨울에 꼭 다시 와야지 했던 곳입니다. 우연히 처음 방문했을 때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여전히 친절한 응대와 맛있는 음식이 그대로였어요. 다른 곳에서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조합의 피자를 맛볼 수 있어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주방이 잘 보이는 구조인데 매번 깔끔하게 유지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겨울엔 유난히 피자를 많이 먹게 되어 3일 연속 피자를 먹은 뒤 방문했음에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도우큐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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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올 한 해는 어떠셨는지, 기억에 남는 소중한 공간은 어디 셨을지 궁금해요. 공간의 완성은 사람이라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 공간은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도구가 있다면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에, 우리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12월 31일
프린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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